8월 17일 토요일 아침 조지아 수도 '트빌리시'를 출발하여 흑해 항구도시 '바투미'로 360㎞를 이동해야 한다. 바투미로 가는 중간에 '스탈린'(1878~1953년)이 태어난 조지아의 도시 '고리'의 스탈린 기념관에 들렀다. 기념관 건물 정면에 스탈린이 어린 시절 살았던 작은 생가 건물을 복원해 놨다.
스탈린의 아버지는 아래 건물의 왼쪽 지하실의 점포에서 구두 수선공으로 일했다. 1층 두 개의 방중에서 오른쪽 방은 주인이 살고, 왼쪽 방은 스탈린 가족이 살았다고 한다. 매우 조그마한 집인데, 과거 스탈린 가족이 살았던 집 그대로 복원했다고 한다.
윤영선 전 관세청장 부부가 스탈린 기념관의 스탈린 생가 잎에서 사진을 찍고 있다.
스탈린의 아버지는 술주정뱅이인데, 어린 시절 아버지의 매질로 스탈린의 오른팔은 평생 장애가 되었다고 한다. 어머니는 독실한 기독교 신자로 스탈린을 신부로 만들기 위해 신학대학에 보냈으나 스탈린은 공산주의 혁명 사상에 빠져서 대학을 중퇴했다. 스탈린은 근세 우리 역사와 악연이 많다. 1937년 연해주 조선족의 중앙아시아 강제 이주, 북한에 김일성 공산주의 정권 수립, 6.25 남침 지원 등 우리 민족과는 악연이 많은 독재자이다.
조지아 사람도 스탈린을 매우 싫어한다고 하는데 관람객이 상당히 많다. 스탈린은 농업국가 소련을 1930년대 중공업 국가로 발전시켜 강대국을 만들었다는 평가가 있다. 일부 나이 든 노인은 스탈린 시대가 좋았다고 향수를 가진 사람도 있다고 한다. 스탈린은 레닌이 뇌졸중으로 쓰러졌던 1922년부터 1953년 사망까지 30년 동안 철권을 휘두른 독재자이다. 스탈린의 손자가 조지아에 살다가 몇 년 전에 죽었다고 한다.
스탈린도 비행기 공포증이 심했다고 한다. 장거리 여행도 전용 기차를 이용했다고 한다. 스탈린이 생전에 탔던 기차가 야외에 전시되어 있다. 기차에 있는 스탈린 집무실과 침실은 매우 소박하고 검소하다는 느낌을 받았다. 스탈린이 죽었을 때 유품을 조사해 보니 재산이 거의 없었다고 한다. 독재자 스탈린은 개인의 치부를 위한 부정부패는 안 했다고 한다. 스탈린의 딸은 미국에 망명해서 경제적으로 어렵게 살았다.
스탈린 기념관 내부.
흑해 바투미로 오는 중간에 '우푸리스치케' 지역에 있는 고대 동굴 도시 '바르지아' 동굴 도시에 들렸다. 기원전 8세기부터 사람이 살았다. 9세기 전성기에는 700여 개 동굴이 있었는데 100년 전 지진으로 200여 동굴만 남아 있다. 동굴 도시 정면에 목가적인 넓은 평야가 있고, '꽈리강'이 평야의 중심으로 지나간다.
관광객들이 바르지아 동굴 도시를 둘러보고 있다.
석양 무렵 흑해(黑海)의 '바투미' 항구에 도착했다. 저녁 식사는 바투미 항구의 선창가에 있는 해산물 식당에서 조지아 레드와인을 곁들여 흑해에서 잡은 생선으로 맛있는 식사를 즐겼다. 바투미는 흑해 연안의 유명한 휴양지이다. 식당에 관광객 손님이 많다. 미리 저녁 식사 예약을 했기 때문에 간신히 자리를 잡았다. 멸치튀김 일종인 '함시' 요리가 고소하고 맛있다.
최근 우크라이나 전쟁을 피해서 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에서 피난 온 부자들이 많다고 한다. 도망 온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부자들 때문에 전쟁 특수를 누리는 휴양 지역이라고 한다. 최전방의 젊은이는 죽어가고 있는데, 도망쳐온 일부 부유층은 한가롭게 수영을 즐기고 있다. 호텔이 시내 중심 상업지역에 있는데 밤늦도록 관광객으로 왁자지껄하다.
이른 아침 바투미 해변으로 산책하러 갔다. 이른 시각임에도 바다에서 해수욕하는 사람들이 많다. 바투미는 북위 41도(서울 37) 지역임에도 '아열대' 기후 지역이다. 아열대 작물인 레몬, 차 등이 재배되는 지역이라고 한다.
아침 시간 흑해 바투미 항구의 해변에서 사람들이 휴식을 취하고 있다.
오늘(8월 18일, 일요일)은 이번 자동차 여행의 목적지 국가인 '튀르키예'로 입국하는 날이다. 조지아 바투미 외곽에 튀르키예 국경이 바로 인접해 있다. 국경 통과 후 210㎞를 이동하여 튀르키예의 흑해 연안 도시 '트라브존'으로 갈 예정이다.
조지아 출국은 매우 간단하게 끝났다. 3일 동안 가이드를 한 데이비스와 헤어졌다. 튀르키예 입국 절차는 이번 여행 중 가장 쉽게 끝났다. 국경에서 튀르키예에서 우리를 안내할 '오 이삭' 군을 만났다. 오 이삭 군은 이스탄불 치과대학 재학생으로 기독교 신자이기 때문에 이름을 성경에 나오는 이삭으로 지었다고 한다. 오 이삭 군 어머니는 튀르키예 주민을 대상으로 한국어를 가르치는 학원을 한다고 한다. K-컬처 덕분에 한글을 배우는 튀르키예 사람이 많다는 얘기를 오이삭군이 말한다.
조지아 바투미에서 트라브존으로 가는 길은 해안선을 따라서 '흑해'의 옆으로 달린다. 흑해 바닷물 색깔이 파란색인데 왜 검은 바다, '흑해(黑海)'라고 부르는지 알아봤다. 튀르크어로 '북쪽' 지역은 검다는 의미의 'black'이라고 부른다고 한다. '북쪽에 있는 바다'라는 의미로 '흑해(black sea)'라고 부른다고 한다. 튀륀어로 남쪽은 영어 'red' (빨간색) 라고 한다. 시나이반도에 있는 홍해(紅海)도 '붉은 바다'의 뜻이 아니고 과거 오스만 튀르키예 시대 '남쪽에 있는 바다' 뜻이라는 것을 알았다.
오후 일찍 트라브존에 도착했다. 시간이 많이 남아서 트라브존 뒤편 언덕에 있는 전망대로 올라가서 차를 마시며 흑해를 관광하고, 튀르키예 공화국 초대 대통령인 '무스타파 케말 파샤'의 별장에 구경 갔다. 신혼부부가 사진 찍는 장소인데 관람객이 무척 많다. '튀르키예 공화국'은 '오스만 튀르키예'에서 유래하는데 2022년 '튀르키예'로 이름을 바꿨다.
중앙아시아 초원에 살던 투르크족(돌궐족) 일파인 '오구즈' 족이 서쪽으로 이주하여 1072년 '만지케르트' 전쟁에서 동로마(비잔틴)제국을 격파하고 '셀죽 투르크'를 세웠다. 셀죽 투르크가 몽골족에게 멸망한 후 14세기 투르크족(돌궐족) 일파로 다른 오구즈 종족이 '오스만 튀르키예'를 세웠다. 오스만 튀르키예는 1453년 콘스탄티노플을 함락시켜 동로마제국을 멸망시킨다. 도시 이름도 '콘스탄티노플'에서 '이스탄블'로 바꾼다. 오스만 튀르키예 왕조는 수백 년 동안 중동과 지중해, 동유럽의 강대국으로 군림했다.
1차 세계 전쟁 때 독일과 함께 추축국이 된다. 패전 후 오스만 튀르키예 왕조는 해체되고, 많은 영토를 그리스에 빼앗기고, 1923년 튀르키예 공화국을 수립하였다. 튀르키예의 국부라고 부르는 '무스타파 케말 파사'가 튀르키예 공화국의 초대 대통령이 되었다.
저녁 식사는 흑해 해안가 식당에서 흑해에서 잡은 생선 요리로 했다. 이번 여행의 마지막 국가에 입국했으므로 이제는 마음이 무척 편안하다. 그동안
